세계 각국은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선진형 건축자재’ 기술 개발에 앞 다퉈 나서는 한편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이기 위한 각종 규제와 인센티브 제도를 병행 실시하고 있다. 이미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고단열 시스템을 적용한 에너지 절약형 건물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 바닥 면적 1㎡당 필요한 에너지를 연간 3ℓ의 연료 소비로 해결하는 친환경 미래주택 ‘3리터하우스’ 등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에너지 절감형 건축자재와 기술들이 선보이고 있지만 실제 건축 현장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건물의 에너지 소비에 대한 정책 입안자와 국민의 인식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선진형 건축자재의 보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민의 생명과 에너지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 미래의 에너지 절감형 건축 시스템 = 지금까지의 에너지 절감형 건축자재와 기술이 건물에서 새 나가는 에너지의 일부를 차단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건물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자급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시스템은 최근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꼽힌다. BIPV시스템이란 태양빛을 이용한 발전소재를 건물의 벽이나 창문에 설치한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즉, 태양광 발전모듈을 건축자재화해 건물 외피(外皮)에 적용함으로써 건물 외관은 물론 건물 운영에 필요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건물의 유리외벽(커튼월·Curtain Wall) 외에도, 지붕과 차양 등 다양한 곳에 적용할 수 있어 넓은 부지와 별도의 구조물이 필요했던 기존 태양광 발전의 한계를 극복했다. 또 건물 자체에서 발전하는 방식으로 송전 과정의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고 건축 단계에서부터 건물의 한 부분으로 디자인하기 때문에 건물의 외관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BIPV시스템은 기존 유리 위에 태양광 발전모듈의 기본 단위인 셀(cell)을 입히는 방식으로 만든다. 최근에는 자동차 유리의 열선처럼 처리하거나 투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외단열시스템도 효율성 높은 미래 에너지 절감기술로 꼽힌다. 외단열시스템이란 건물 구조체 바깥쪽에 단열재를 배치하는 공법을 말한다. 외단열 방식은 에너지 손실을 일으키는 열교(熱橋·Heat Bridge·단열재가 끊기거나 관통돼 건축물 내·외부의 열적 연결경로가 생기는 것) 현상이 생기기 어렵고 단열재를 연속 배치하기 쉬워 에너지 효율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 최근 건물의 에너지 성능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외단열 시스템의 적용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나아가 획기적인 단열성능을 갖춘 단열재의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기존 단열재의 열전도율(낮을수록 단열 성능이 높으며 단위는 W/m·K)은 0.04~0.05W/m·K 수준으로 패시브하우스나 3리터하우스와 같은 고효율 에너지 절약 건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단열재의 두께가 300~400㎜로 늘어나는 한계가 있다. 두꺼운 단열재를 사용하면 건축물 면적이 줄어들고 시공성이 떨어지며 시공비도 올라가는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진공단열재(VIP·Vacuum Insulation Panel) 적용 단열시스템이다.
진공 단열재는 투습방지용 필름과 알루미늄 박막으로 이뤄진 차단막으로 봉합하고 내부를 진공 처리해 만든다. 열전도율은 약 0.005W/m·K로 기존 단열재보다 단열 성능이 10배가량 우수하다.
◆ 선진형 건축자재 보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국가 에너지를 지킬 수 있는 선진형 건축자재 및 기술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지만 실제 보급 및 적용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크게 뒤처져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책 입안자, 국민들의 인식이 하루빨리 바뀌지 않고서는 후진국형 화재 참사나 에너지 효율과 거리가 먼 건축자재의 사용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후진국형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회성 대책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과감하고 적극적인 법제화를 통해 화재에 취약한 건축자재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형주 경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안전기준의 강화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만 신경을 쓸 일이 아니라 기준 강화를 통해 업계의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절감형 건축자재의 보급 및 활성화도 결코 늦출 수 없는 선결 과제로 꼽힌다. 강재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의 에너지 효율 인증제도는 의무화돼 있지 않다 보니 시장논리에 의해 자꾸 외면되기 마련”이라며 “현재 추진 중인 에너지 효율등급제가 실시되면 소비자와 건설사들도 자연스럽게 고효율 제품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제도 개선을 통해 건물의 가치판단기준을 바꿔나가야 한다”면서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에너지 효율성이 집값에 반영되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 학계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 2001~2006년 우리나라의 에너지기술개발비 투자는 12억9000만달러로 미국(474억달러), 일본(223억달러) 등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김종엽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박사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가 뜻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 제고는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에너지 절감형 건축자재나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비용만 높아지고 제값을 못 받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선진국과 같은 인식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업체와 투자자, 소비자들이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의 신설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